고등학교에 올라와 가고 싶었던 대학을 꼽자면, 나는 단연코 '고려대'라고 말했다. 서울대를 생각하기에는 내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성적은 평균은 아니지만 잘 나와주기만 한다면, 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무너진 수능성적은 나를 고려대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고려대를 향할 수 있었지만, 다시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한 고려대학교는 대학생이 된 이후, 내 머릿속에서 보다는 언론에서 많이 나왔다. 2005년은 고려대학교 100주년이라 신문에서 긍정적 기사로 떠들썩 하기도 했던 것과 동시에, 삼성 이건희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에 대해 학생들의 엄청난 반발을 알리는 기사도 떠들석 하게 울렸다. 게다가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시끄럽다. 고려대병설보건전문대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으로 편입되면서, 전문대생이었던 2,3학년 학생들은 고려대 정식학생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학생회에 대한 투표권도 얻지 못하게 되면서, 학생들은 반발하였고, 언론에서 '교수 감금'이라고 말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거기에 가담하게 된 7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출교"조치라는, 개인에 있어서는 엄청난 아픔을 가져다 주게 되는 조치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출교'라는 징계를 철회하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저 일련의 사건들에 있어서 '고려대학교 학생'이라 함은, 100주년 건물을 지어준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고, 학생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분투하고, 징계를 철회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학생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격렬히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삼성에 취직 안 되면 너희들 때문이다!"라며 돌을 던지는 학생도 고려대학교 학생이요, 보건전문대 출신에게 권리를 주지 않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고려대학교 학생일 것이며, 출교조치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찾아와 "이러지 말라"고 말하고, 남 몰래 징계철회 플랜카드로 찢는 사람도 분명 고려대학교 학생이다.

  만약, 내가 수능을 잘 치르고, 고려대에 입학해 지금 고려대학교 학생이 되었으면, 저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지금 내가 교대에서 보이는 태도를 그대로 고려대에서 행했다면, - 물론 교대에서의 사안은 다르겠지만 - 박사학위 준다고 시위하는 사람, 징계철회를 위해 농성하는 학생들을 보고, 그들을 따랐을까? 같이 시위에 나섰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심지어,그들을 '좌파'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고려대'에 들어왔다는 'PRIDE'로 말미암아, 고려대라는 메리트를 자랑으로 삼으며, 콧대를 높이며 다니면서, 투쟁하는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는' 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있는 위치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비열한 인간'으로 변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에게 친구가 하나 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였고, 그 친구도 고려대학교에 가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엘리트 집단에 가서 엘리트 집단을 깨버리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친구다. 그는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하고 있었고, 나와 '삼성'에 대한 대화를 할 때도, 적어도 'About 삼성'에 대한 건 진지하게 대화했었다. 그랬던 이 친구는 지금 고려대학교 사범대에 다니고 있다. 서로 다른 대학교에 다닌 이후엔, 이 친구를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작년 4월에 만난게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고려대학생'인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친구의 블로그를 보고 있으면 정말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반전평화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 같다. 게다가 친구는 사범대에서 큰 일을 맡으며, 학교와의 마찰에도 서슴없이 항의를 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이 친구는 징계철회를 위한 농성에도 함께 참여하는 듯 보인다, 아니 참여한다.

  역시나, 이 친구는 고려대에 가서 적어도 내가 들었던 그만의 원칙을 꿋꿋이 지키는 듯 보인다. 고려대라는 메리트를 등에 업고 자신을 엘리트라며 콧대를 높이며 다니는 학생으로 변하지 않고, 이렇게 부당한 것에 대해 맞서 싸우는 친구를 보면, 참 대단하며, 흐뭇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 친구를 지켜보게 되면, 내가 고려대에 들어가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처럼 그 안에서 '자유, 정의, 진리'를 위한 자신만의 이념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 쫓겨 (혹은 이 현실을 자랑스러워 하며) 콧대를 높이며 다녔을 나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기에 난 그저 이 친구가 자랑스러울 뿐이다.

P.S. 교대에서도 이런 이념을 형성할 곳은 없을까?

'喜噫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가 얇다  (2) 2006.09.06
만리재의 유혹  (2) 2006.08.16
고려대와 친구, 그리고 나  (2) 2006.07.28
블로그와 인격  (6) 2006.07.24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하지 마세요  (4) 2006.07.23
남는 것이 사진 뿐이랴?  (0) 200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