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아침까지 몸이 무거웠습니다.

  그 전 날, 우리 반 아이들과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참회와 반성으로 모든 아이들이 허벅지를 3대맞고, 담임인 나도 5대를 맞았습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사는 의미가 없다며 저와 아이들 모두 눈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시련을 통해 가르침을 주기엔 아직 100일도 안된 새내기 교사는 견뎌내기 너무 힘들었는지 그날 저녁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그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TV를 보며 그 노곤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텔런트 여운계님께서 암으로 별세하셨다는 소식 외에는 별 다른 소식이 없었고, 케이블TV를 보며 좀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전 날 퇴근 뒤 바로 잠이 들었던지라 아이들이 우리반 카페에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우리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반에서 나름 인기가 많은 남자 아이가 '오늘의 슬픈소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그 글이 어제의 일에 대해 올린 것이라 생각하고 클릭했습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뜻밖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자살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을 쓴 것입니다. 평소에 장난기 많은 친구라 장난을 친 것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또 이 장난은 너무 심한 거라는 생각에 월요일에 학교 가서 좀 크게 야단을 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5분 동안 반 카페를 구경하고 있던 찰나, 옆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대." 평소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동생인지라 저를 비롯하여 저희 어머니께서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동생의 발언을 일축하였습니다. "그럼 네이버 메인페이지에 들어가봐."라며 맞대응을 하는 동생의 말에 저는 기가 찬듯이 네이버 메인화면을 검색했습니다. (저의 컴퓨터는 인터넷익스플로러를 클릭하면 반 카페가 홈페이지로 설정되어 반 카페부터 뜹니다.) 그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얼른 TV를 MBC로 돌렸습니다. 속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꿈인가 했습니다. 어제 호되게 아이들을 다그쳐서 아직도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줄 알았습니다. 말 문이 막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방금전까지 무거워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습니다. 멍했던 정신이 갑자기 살아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어제 새내기교사로서 견디기 힘들었던 가르침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될 정도로 정말 큰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러한 충격적인 슬픔을 미리 알고, 때문에 어제 그렇게 우리반 학생들과 제가 울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했습니다.

  왜 '당신이 바라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가셨습니까?

  당신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시는 동안, 아니 그 전부터 당신은 거대한 바윗덩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지키고 서있는 바윗덩이, 정의를 무시하는 바윗덩이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 바윗덩이를 깨부수기 위해 달려들었습니다. '바보'소리를 들어가며, 다른 사람들은 전혀 깰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오히려 바윗덩이를 지키는데 일조하고 있을 때, 당신은 묵묵히 그 바위를 깨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평등'이라는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 '노무현'을 바라보며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실낱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던 정의는 당신의 재임기간동안 실현하기 힘들었습니다. 권력을 빼앗긴 주류세력이 당신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럴 때 마다 승부수를 던지며 당당히 맞섰습니다. 반대세력은 물론 지지세력까지 등을 돌렸지만, 자신의 신념과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전혀 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지만, 당신의 퇴장은 그리 쓸쓸하지 않았던 것도 당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진정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당신 자신이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자책하시는 글을 올렸을 때에도, 당신이 (아니 당신 가족이) 돈을 받았더라 하다라도 당신이 심어준 그 희망은 당신 스스로 버리지 않고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 그 동안 그랬던 것처럼 지켜주시길 바랬습니다. 그 당신이 주신 희망 때문에 당신의 자조섞인 글에도 당신의 지지를 놓치 못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잘못은 그 전에 대머리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작은 액수였던 것을 '검찰이 추측했다'는 것도(그 사실 조차도 언론에 의해 추측과장되었다는 것도) 당신을 아직 버릴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그 희망의 버팀목이라 믿었던 당신,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진정한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는 그 희망은 다시 꿈으로 멀어졌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고통스러운 MB정부 속에서도 그나마 빛이 보였던 그 희망은 다시 사그라들었습니다.

  왜 던지셨습니까? 당신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묵묵히 지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물며 당신이 너무 심하게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동정하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던지셨습니까? 대한민국을 걱정하며 그 괴물같던 바윗덩어리 주류세력과 당당히 맞서던 그 배짱은 어디로 가시고 그렇게 허무하게 몸을 던지셨습니까? 아니면, 마지막 정치적 카드였던 겁니까?

  당신이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라본 사람들을 버리고 간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이 당신 인생에서 그렇게 공들여 노력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당신 스스로 버리고 가셨다는 그 사실이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당신보다, 당신보다 제가 더 나쁜사람입니다

  뉴스를 보면서 당신이 결심을 하고 몸을 던지시기 까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마음을 따라가보았습니다. 당신이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싸우고, 비상식적인 대한민국의 역사, 구조를 바로잡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돌아오는 건 엄청난 비난과 발목잡기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의 뒤로 물러서셨는데도 이놈의 MB정부는 당신을 달달 볶으며 당신의 모든 것을 벗기려 했습니다. 많은 고민과 번뇌로 가득한 최근의 당신의 모습은 정말 많이 힘드셨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당신의 손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 가슴 속에만 남아있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을 당신은 직접 실천에 옮겼습니다. 정치적인 행동이나 정책은 결국 보수(수구)와 진보 모두 등을 돌렸지만 '탈 권위적인 대통령'의 모습과 과거를 청산하려는 당신의 노력은 '진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당신의 노력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을 보이거나 비난을 거듭할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외로움을 견디며 지금까지 버텨오신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무관심한 사람 중에 하나라 고백합니다. 당신의 정치적인 발걸음에 동의하면서도 정작 탄핵정국에는 촛불도 들지 않았고, 당신이 수구세력에게 크나큰 압력을 받고 있을 때에도 뭔 일 있냐는 듯, '알아서 잘 하시겠지.'라는 생각에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이 블로그에 열을 내며 올리던 글도 거의 절필 선언이라도 한듯 뚝 끊었습니다. 이 사실마저도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당신을 지지하면서 은둔하며 지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당신보다 제가 더 나쁜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 고되고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신 것도 모르고 무관심한 것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앞으로라도 이 MB정부에서 벌이는 악독한, 자기네들만 생각하는 일들을 벌일 때마다 적극적인 참여를 하려 합니다. 당신이 꿈꾸던 대한민국은 저도 꿈꾸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팔호광장에 당신의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당신을 향한 촛불을 들지 못한 걸 후회하며, 가시는 길이라도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오늘 옷을 갖춰입고 퇴근하는 길에 찾아뵙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2009년 5월 26일 자정
故노무현 前대통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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