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던 때는 노무현 정부의 임기 중·후반 이었다. 구성원이 작은 교대에서도 나부끼던 운동권 학생들의 구호는 '노무현 정부 신 자유주의 타파'였다.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노무현정부가 좌파의 전형이라며 자유시장경제가 무너질 것 처럼 떠들어 대는데, 신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니. 그 때는 물론 지금도 노무현 정부가 신 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떠들어 댔던 신 자유주의는 정말 진정한 자유시장일까?

   저자는 첫 장부터 '진정한 자유시장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진짜 자유시장이 되려면 정부라는 곳은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법이라는 것도 없어야 한다. 그냥 사람들이 자유롭게 재화와 노동, 무형의 가치들을 교환해야 한다. 이득을 위해서는 예닐곱 살의 꼬마들도 공장에 가서 15시간 이상 일을 시켜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시대의 모습처럼, 이렇게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곳이야 말로 자유시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곳이 있는가? '옳지 못하다.'는 것에는 법이 규제하고, 정부가 제어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말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곳인가? 그렇다면 대기업 친화정책을 썼던 1970년대의 정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선진국은 자유주의 정책으로 국가 경제가 도약하지 않았다. 정부의 강한 관세정책 등으로 기업을 보호하였다.

   23가지의 말들 중에 한 가지 새로웠던 건,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꾸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상에서의 교류가 활성화 되었고, 사물 인터넷 등으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여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했지만, 이는 세탁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탁기가 없었던 시절에는 일일이 손으로 빨래를 하느라 한나절 이상 걸렸다. 세탁기가 생기면서 특히 여성은 한나절의 시간을 벌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할 여지가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성의 권리 향상, 선거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거센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의 그것보다 더 획기적이지 않은가?

   요즘에는 언론에서는 글로벌 경영이다, 서비스업이 대세다, 교육이 국력이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 자본은 원래 기업의 국적을 벗어날 수가 없고, 제조업을 소홀히 하면 나라의 기간 경제가 무너져 경제 위기가 올 수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선진국은 오히려 대학진학률이 더 낮다. 고졸출신도 장인으로서 인정받기 때문이다. 정부가 손을 놓아야 한다고 앞에서는 떠들어 대지만, 실제로는 대기업 중심의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대기업, 기득권, 선진국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 약자, 개도국 중심으로 경제를 생각한다면 세계 경제가 더 이상 위기에 빠지지 않고 재건될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작은 일에서는 여파가 미미할 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상생하지 않고 눈 앞의 내 이익을 위해서 서로 달려들면 모두가 서서히 망하게 된다. 경제적인 파이도 작아질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불신으로 각박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저자의 진실폭로(?)가 '좌파 자유주의자'로 시작하는 책 부제 때문에 가려지는 게 안타깝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국내도서
저자 : 장하준(Ha-Joon Chang) / 김희정,안세민역
출판 : 부키 20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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