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대생 동맹휴업을 다시 생각하며



  조회 수가 거의 없는 저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몇 주 전, 갑자기 조회 수가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그 전에 우리 학교 동료 선생님에게 제 블로그를 소개해 주었는데, 그 선생님이 방문을 해서 그런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 조회 수가 일주일 동안 꾸준히 30건~40건을 넘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싶어 방문 링크와 검색어 등을 보니 '교대 불참비', '교대 벌금'이라는 단어로 검색해서 많이 들어왔던 겁니다.
  아!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그 무렵, 전국의 교대생들이 박근혜 정부의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에 반대하며 동맹휴업(수업거부)에 들어간 것입니다. 제가 다닐 무렵에는 한 달 가까이 수업 거부를 하였기 때문에 하루 정도 수업거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의례적 행사이겠거니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벌금에 관한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직도 동맹 휴업하는 날 투쟁(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는가 봅니다. 아직까지 그러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국 교육대학생 연합이 수업거부를 하며 기자회견을 합니다. ⓒ 연합뉴스


  9년 전, 아니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교대생들은 수업 거부를 자주해 왔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반대', '학급총량제 폐지' 등 여러 교육부 정책들에 대한 반대였습니다만, 실제로는 교원임용정원을 충분히 확보하라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교대생들의 수업 거부 행태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교육부의 정책들은 이미 봄 학기에 제시되거나 검토하고 있는 사안들이었고, 심지어는 1~2년 전에도 나오던 것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신자유주의'라는, 교대생들에게는 막연할 수밖에 없는 모토를 갑자기 꺼내 들고 나와 수업 거부를 합니다. 그것도 꼭 임용정원이 발표되는 9월에서 10월 사이에 말입니다. 정말 정책을 반대하는 거였다면, 봄학기에도 충분히 의논하여 수업 거부를 논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정말 기가 막혔던 것은 수업 거부를 하며 서울로 상경하여 투쟁(시위)을 벌이는데,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물어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려 하였다는 겁니다. 이러한 지도부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어 좀 격한 감정으로 '민주주의가 없는 교대'를 썼고, 더 격한 감정으로 '밥그릇 싸움이 정당하다는 교대생들에게'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소위 '비주류' 행보를 보인 글에 전국의 비주류 교대생들이 댓글을 달아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교대생 수업 거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 문화방송

 
  저는 아직도 교대생들의 이러한 수업거부 행태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러한 주류세력들이 비주류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에 분개만 했을 뿐,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기만 하였습니다. 수업거부를 주도하는 학생들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주류의 사람들도 주도하는 학생들에게 분노만 표출하는 것도 또한 잘못된 행동이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저에게는 이미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돌이켰을 때 서로 어떤 생각으로 양보와 타협을 했으면 좋았을지, 양쪽의 입장에서 한번 써보고자 합니다.

  반대하는 학생을 진심으로 설득하고, '찬조금'을 받자
 
  수업 거부를 주도하는 학생들은 대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투쟁을 하는 건 결국에는 교원 정원을 더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교원 정원이 더 확보가 된다면 교대생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데, 투쟁을 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떡고물을 받으려 한다. 무임승차를 하려 하니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금전적으로라도 지원을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닙니다. 사실 교대생들이 투쟁을 하는 행동으로 교육부가 동요하지는 않습니다. 교육부도 힘이 없습니다. 교육부가 정원을 제시하면 돈을 집행하는 기획재정부가 이리저리 조정합니다. 그렇지만 교대생들이 이러한 제스처를 취해주는 것이 무조건 무시되는 것은 또한 아닐 것입니다. 청년실업으로 뒤숭숭한 한국사회에서 교대생들의 행동은 더 힘을 얻으면 얻었지 여론의 비난은 덜 할 겁니다.
  이러한 '제스처'를 위해서는 경비가 많이 듭니다. 하루 투쟁을 하러 가는데 버스를 대절해야 하고, 식사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등 경비가 한 학과당 적어도 15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 정도 들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렇게 많은 돈이 대학생들에게 있을까요? 한 사람에게 걷어도 몇 만원은 걷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비는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분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투쟁이라는 것은 서로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행동하는 것이고, 그러한 순수한 의도로 참여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재정적인 부담도 내야 하는 것입니다. '투쟁을 통해 교대생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데 나만 참여해고 저 학우는 참여하지 않으니 나만 손해'라는 마인드는 투쟁의 순수성 마저 의심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투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을 들어 수업 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강압적인 '벌금'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설득하고 요청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찬조금'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조금'을 내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힘든 작업인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벌금'이라는 또 다른 폭력보다는 장래에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먼저 설득과 배려, 민주주의의 함의를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힘든 일이지만, 그래야 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투쟁(시위)하는 학생들의 노력과 수고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
 
  투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는 임용정원이 줄어도 충분히 합격할 자신이 있으니 임용정원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는다.'라던가 '나는 투쟁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알아서 해라.'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나만 잘 되면 된다, 또는 나는 이런 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귀를 막아버린다면 그 또한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 학생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투쟁을 하는 집행부 학생들이 그래도 교대생들의 대의를 위해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원수보다 더 원수처럼 지내면 그것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선생님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노고를 위해 금전적으로 나마 '찬조'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교대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과 더불어 소수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투쟁을 주도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모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주고, 이를 토대로 조금씩 합의를 이끌어 내야 투쟁의 정당성은 더 강력해지고, 선생님의 모습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어린이들에게 민주주의의 모습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예비 선생님의 모습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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