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이 理想을 현실로 만드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젊은 사람들이, 혹은 어떤 무모한 도전이나 구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평범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당신이 꿈꾸는 것은 한낱 이상에 불과하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다.'

    네, 그렇습니다. 당장 앞을 본다면 이를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한낱 이상이 실현되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가슴 아픈 일도 많았지만 기나긴 독재 속 항거 끝에 찾아온 민주화라던가 등등 말입니다.

  '푸른 理想을 안고'는 10년 전인 2005년에 만든 블로그의 이름입니다. '푸르다'는 의미는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원래 성적보다 훨씬 나오지 못한 수능점수에 낙담하며 교대에 들어가고 난 후, 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다른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원했던 '현실 속 이상'과 많은 다른 현실에서 다른 理想을 시원하게 찾고 싶은 도피처를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창기 글에서는 대학생활에 대한 회의가 많이 묻어나는 글을 적어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주간 시사잡지를 정기구독을 하게 되었고, 기획 기사들을 읽으며 나름의 나만의 생각들이 떠올라 이를 블로그(당시에는 홈페이지)에 하나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2006년 교대에 수업 거부 사태가 일어났고, 그 수업 거부 사태에 대한 소신 있는 글을 적어내려 가면서 제 블로그는 사람들이 조금씩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제 글에 공감을 해 주시는 분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공존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다 교대 투쟁도 사그라들고, 그 후로 자연스레 4학년이 되어 임용 시험 준비를 하게 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런 핑계로 글을 안 쓰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없어지고, 막상 쓰려고 해도 잘 생각이 안나더군요. 글을 이렇게 안 쓰면 나중에 글 쓰기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글을 써보고자 했지만, 한 번 끊어진 글은 쉽게 회복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어느덧 교사가 되었고, 교육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지만 정작 이를 글로 옮기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가게 되니 생각은 많아지지만 이를 펜으로 쓰려니 더 어렵더군요. 일에 치인다는 핑계로 블로그를 다시 재기하자는 구상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그림을 그리기에는 너무 귀찮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그냥 눈 앞에 닥친 일을 되는대로 메꾸며 사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고민이 본격적으로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마침 올해 뜻하지 않았던 전담을 맡게 되면서 5월까지는 바빴지만, 6월부터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올해는 생활에 조금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블로그를 다시 운영하기 위한 구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카카오에서 새로 시작한 '글쟁이'들을 위한 서비스 브런치가 개설되었습니다. 블로그와 더불어 저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작가 신청을 했더니, 추석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작가 신청을 받아주셨습니다.

  이제 理想은 20살에 나의 현재 모습에 도피하고자 했던 허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헛된 꿈일 거라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가만히 놔두는 것들에 대하여, 비록 理想일지라도 그 理想을 향한 몸부림을 (이 공간을 통해서) 기꺼이 하고자 합니다. 비록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한 몸부림이 역사를 바꾸었던 것처럼 나와 내 이웃, 내가 사는 곳,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모습이 좀 더 사람 사는 사회, 공정한 사회, 책임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理想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푸른 理想을 향한 몸부림'을 다시 시작합니다!

* 이 글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며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