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지난 학기, 교육철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같이 읽어본 책 중에 하나다. 이 책을 선정하고 난 뒤에 런저런 사정의 이유로 휴강을 연차례 하고 난 후, 책을 다 읽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 교수님께서 첫 운을 떼신 말씀이, "선생님은 이 책을 읽고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당황은 했다. 교수님은 어떤 점에서 내가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을까? 기억에는 없는데 그 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서 그걸 기억하시고 말씀하신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런데 그리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정말 할 말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대를 다니면서, 그리고 교사가 되고 나서 몇 년 동안 아니, 어쩌면 최근에도 무심코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제가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교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평소 보던 모의고사 중에서 아마 최저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바로 전 달에 본 모의고사에 거의 모든 영역에 찍혔던 1등급이, 정작 수능점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 참 많이 절망했다. 그 절망감에 교대에 들어가서는 참 많이 방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대학생도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내뱉고 다녔다. 본인보다 소위 '더 등급이 높은 대학'에 간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계속 내뱉었다. 그런데  '더 낮은 등급의 대학'에 간 사람에게는 겉으로는 내색 안 하려 하지만, 내심 우월감이 팽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고가 학력차별에서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다. 신문 배달하며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에게 "교내 알바하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남의 일이 되어버렸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억울한 호소에 "날로 정규직을 먹으려이 되려 한다."고 하며 오히려 비난한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애교심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대학 서열을 대학생 스스로 애교심을 넘어 기득권의 좌표로 설정해버리고, 이를 상대방의 전부를 판단하는 잣대로 써버리는 건 큰 문제임은 분명하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10년 전에 블로그에 올렸고, 이를 맹비난하는 댓글을 보며 놀랐던 적이 있었다.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생각보다 지나친 비난 댓글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저자가 그 맥락을 콕 짚어주었다. 야구 잠바에 학교, 학과를 넣은 이른바 '과잠'을 애교심, 애과심의 발로가 아닌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는, '기회는 평등하지 못하고, 과정은 공정하지 못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학력 위계주의'에 눈을 감으면, 언젠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개인이 아니라 소속 학교, 학과, 학번 등의 집단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위계질서에 개인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무놔가 젊은 세대에서까지 재생산되고 있다는 건 절망적인 일이다.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p.34 


  그렇지만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행태가 꼭 그들의 탓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계발 열풍이라 할 정도로 자기계발 서적이 잘 팔린다.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작금의 청년실업이 자기계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청년 개개인의 탓일까?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비정규직이 된 저 사람들은 투쟁을 통해 정규직이 되려 하다니, 그럼 비정규직을 마다하고 정규직이 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나는 뭐란  말인가?"라는 물음에 어른들은 "니 탓이다. 네가 노력을 안 하는 거 아니냐, 자기계발서를 보고 너를 더  담금질해라." 또는 "아직 덜 흔들렸구나.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단다. 많이 아프지? 아프니까 청춘이야."라고 잔인한 위로를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2015년 청년 실업률이 9.7%로 사상 최고로 올라간 이 현실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청년들이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학 서열로 모든 것을  합리화해버리는 청년들을 만들어낸 원인에는 기성세대들이 나열한 학력 서열주의, 그리고, 그 전에 이런   기성세대들의 편협하고 안이한 기득권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건 아닐까? 그 전에야 이러한 기득권이 통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 이후 경제활동 가능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의 구조가 변하고 있을 때에는 이러한 기득권의 부메랑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차별을 옹호하는 시각을 드러내버렸다. 그렇지만 대학을 다니다 보니, 나보다도 더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았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교대'라는 간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정한 길에 대해 분명한 믿음과 의지가 있었다. 저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자기계발의 모순을 없애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성세대의 탄탄한 리그를 타파할 수 없다면, 조금 다른 길을 모색할 방법을 찾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마당에 출연한 전영수 교수는 "무조건 앞으로 질러가는 방법이 과거에는 통했지만 이제는 돌아가는 길이라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도 고민해야 한다. 앞질러 가는 방법밖에 없듯이 비교하는 게 아니라, 이  방법뿐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선진국이다."라고 말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은 없지만  기성세대를 이 만들어 놓은 정의롭지 못한 길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맹목적으로 쫓아갈 것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내가 하고 싶은 길, 때로는 돌아가더라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자아가 안정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국내도서
저자 : 오찬호
출판 : 개마고원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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