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님이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담담하게 풀어 낸 일상 수필집이다. 읽기 쉬운 문체로 명쾌하게 생각을 풀어 헤치니, 손석희 앵커의 서평처럼,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러한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며 읽었다. 다방면의 많은 주제를 논했는데 그 중에서 한두가지만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떳떳한 나의 행복


  어릴 떄부터 '공동체'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어린이들에게 학생들이 중구난방으로 자기 맘대로 행동을 할 때면 항상 '공동체'를 강조했었다. 동양문화에서 그토록 강조한 공동체, 집단주의 문화는 2차대전 이후, 동북아 3국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개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집단주의 문화에 대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저자는 개인주의에서 오는 행복을 말한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 이 말은 그래서 SNS에도 올렸던 적이 있다.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 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31~32쪽

  서양, 그리고 동아시아 중에서도 유독 '남의 시선'에 민감한 한국인. 명품 브랜드 판매율 1위인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난 연말 시내를 나가보니 지나다니는 시민 90% 이상이 유명 스포츠 아웃도어 패딩들을 입고 있었다. 패딩만을 본다면 마치 교복을 나눠 입은 것 같았다. '교복'을 입지 않은 나와 가족들이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입은 외투가 '이상해 보이는 순간, 나는 '남부러운' 사람이 된다. 저자의 말대로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살아 왔다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방법


  점점 갈 수록 우리나라 정치는 계속 갈등만 부추기는 것 같다. 특히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강경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지치고 있다. 저자는 남과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본인과는 상관이 없는 일에 감정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고 한다. 개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저자가 사회를 바라볼 때에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이 많은 게다. 그렇게 '아니다' 싶은 것들을 바꾸는 데 있어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상대 진영의 단합만을 부추길 뿐이라며 사례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맞서 싸우기 보다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163쪽

  사회생활을 하면서 옆에서 수많은 갈등들을 보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해결이 되었던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도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았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 마다 갈등을 야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이 글을 읽고 보니, 내가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면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바꿔야 한다며 나서기 보다는 조금씩 바꿀 수 있도록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전에,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그게 중요하다.


  냉소적인 평론가가 아닌 낙관주의자!


  어머니께서 집에서 어떤 일을 갑자기 하실 때 마다, 나는 이상하게 토를 단다. "그렇게 해서 언제 끝나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너는 왜 맨날 시작 하지도 않았는데 토를 달아?"라고 하시며 혼내신다. 그 전에는 그래도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곰곰이 생각해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던 건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팔짱 낀 채 '한계''본질''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267~268쪽

  집에서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밖에 나와서도 어떤 일이 있으면, 뒤에서 팔짱 끼고 이래야 된다, 저래야 한다, 말만 늘어뜨린 적이 많았다. 아직 내가 그렇게 나서서 할 지위에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조그마한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점점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면서 평가만 하는 부류로 전락해가고 있는 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본다. 책임을 회피하는 그런 못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저자가 인용한 미국 드라마에 나온 대사,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라는 말은 그래서 더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공동체'라는 말을 쓰는 걸 자제하고 있다. 올해 가르쳤던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이 알아듣기 어렵겠지만, 수업에 들어갔을 때 개인주의라고 말하면, '이기주의'와 같다고 생각하길래, 둘은 서로 의미가 다르다 말했다. 좀 알아듣기 쉽게 개인주의는 나'도(사실 '도'보다는 '부터'인데)' 생각하는 것이고, 이기주의는 나'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의미가 맞게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공동체 때문에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정체성마저 버리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갖지 말자. 그리고 조금씩, 끊임없이 움직이자. 조금씩, 끊임없이...



개인주의자 선언
국내도서
저자 : 문유석
출판 : 문학동네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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