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내미는 손

喜噫希 2017.09.17 00:45

  얼마 전,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 계시는 교감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처음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가 부재 중 전화를 보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내 소식을 모르냐?”고 하시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보통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인사발령을 보고 먼저 전화하는데, 본인 소식을 친히 먼저 알려주시다니! 전화를 걸고 받는 입장이 바뀐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다른 학교에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하관계도 아닌 데다, 평소 다른 학교로 떠난 이후에는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소극적인 성격이라 이런 전화가 많이 낯설다. 그런데 이렇게 친히 전화를 해 주시니 굉장히 반가웠다. 교감선생님께서 정말로 나를 좋아해 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러한 관계를 맺는 건 나에게는 처음인 것 같다.


  선생님들과 지내온 관계를 돌이키자면, 우선 어머니뻘 되거나 아버지뻘 되는 선생님들에게는 살갑게 대하는 면이 많다. 다른 젊은 선생님들에 비해서 그런 건 잘하는 것 같다. 주변 젊은 선생님들을 보았을 때, 나처럼 연배 있는 선생님들과 편안하게 그리고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런 경향은, 신규시절부터 맺어진 동학년 선생님이 대부분 연세 있으신 선생님들과 만나게 되면서 익숙해진 듯 싶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선배 선생님들도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선배 선생님이기 때문에 예의를 차리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편하게 이야기 한다. 반면 그 중에는 자기 주장이 강한 선생님들도 계시는데, 이런 분들과는 업무적으로는 수월하게 지내고자 물러나지만, 그 이상으로 아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경우 모두, 같은 학교(직장)에서 오고 가며 만나는 선생님들 사이의 이야기이지, 학교를 떠나고 나면 내가 먼저 연락하거나 인맥의 끈을 이어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꽤 있다. 나이가 3~4살 위이거나 아래인 동성의 선생님들과 그런 경우가 많았다.(이성 선생님들은 내 주장을 그리 크게 내세우기 보다는 잘 지내보려고 하는 따뜻한 감정이 먼저 나온다. 본능인가 보다. 그리고 크게 트러블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냉정하고 차갑게 구는 나의 이상한(?) 성격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없거나 그리 크지 않으면 먼저 나서서 이야기 하지는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주저없이 이야기를 이끌고, 내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도 쿨하게 인정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나도 어느 정도 불편한 관계가 해소된다. 그런데 친해지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된다. 내 속에 있는 알량한 자존심이 먼저인 것 같다. 그 '알량한 자존심'이란,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고 있다는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하는 딱 그런 성격이다. 그래서 무언가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사람에게 잘 해주다 가도 굉장히 차갑게 대한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 선생님의 경우는  나 어린 사람이 그러니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도 그걸 크게 내색하지 않아서 경력이 적었을 때는 그걸 잘 몰랐다. 하지만 정말 후회하고 있는 관계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 선생님인 경우다. 내가 선배이다 보니,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처음 내딛는 교직 생활을 어려워 하는 친구들을 보면, 누구보다 더 애틋해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해주고 관심을 많이 주다 보니 이러한 나의 행동에 대해서 그래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느낀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생겨 차갑게 대하면, 상대방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어떤 경우는 나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 너무나 드러나서,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이를 좀 풀려고 시도를 했더니 상대방이 엄청나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다. 상대방이 끝끝내 거절을 하려 했지만, 여러 차례 화해를 시도한 끝에 나를 예민하게 배척하는 감정은 누그러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많다. 짧은 교직생활 중에서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 내가 관계를 맺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유독 나이가 비슷한 동성의 선생님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경력과 나이가 비슷한 동성의 상대방을, 머리 속으로 아무리 그렇지 않고 같이 가야하는 동료라고 생각해도 경쟁자로 은연 중에 - 본능적으로 - 느끼는 것 같다. 지금 같이 근무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아주 사소한 것, 예를 들어 운동장에 의자를 나르는 데 다른 선생님이 의자 4개를 한꺼번에 들면, 본인도 적어도 4개, 아니 그 이상을 들려고 경쟁심이 발동한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신념과 달라서 그런 행동이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본능'을 감추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시기심'이라는 게 생기고, 상대방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건 (앞서 언급했듯이)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자제하려고 하는 아니, 자제보다는 그것을 드러냈을 때 상대에게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는 자세이다.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꺼려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개인적인 성격도 있지만 이것은 그런 문화가 익숙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 이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이러한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로 까지 이어진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 탓으로 돌리기에는 나의 개인적인 성격의 탓이 더 크다. 너무나 소극적인 탓에 내가 계속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먼저 나서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에 피곤함을 느끼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아주 일부라도 (몇 사람만 이라도) 먼저 나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그래 놓고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하지 않으면, '나는 상대방에게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며 혼자 상처를 받고, 더 연락을 꺼린다. 참 안 좋다. 안 좋아.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받고 얼마 뒤, 내가 있는 지역에서 열린 교육감기 육상대회에서 다시 만나 뵈었다. 전화로 안부를 전해주시고 나서 얼굴을 뵈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올라올 정도로 정말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비록 나보다 더 나이가 어리고 후배일지라도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리지 말자.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연락하고 안부를 물어 보아야겠다. 기분 좋아지는 일은 먼저 나서서 행동해야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상식이고 진리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이어 나가고 싶은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래서 인간이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고, 그것이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연구결과<서은국 교수, 『행복의 기원』>처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하나씩 터득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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