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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이상한 교대, 이상한 교사

by 맑은마루 2017. 10. 1.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② 현실과 동떨어진 교대, 임용시험

 

  올해 내가 살던 도시를 벗어나 '군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내가 사는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아 차로 50분 정도면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 몇 분과 같이 카풀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며 통근을 하는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교대의 교육과정'에 대한 주제로 흘러간다. 좋은 이야기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는 데 교대를 나온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저자는 교대에 대해 쓴 글 제목부터 '교대는 바보 양성소'라 지었다. 그리고 이 글의 첫 문장은 '젊은 교사들은 똑똑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라고 선언한다. 나는 제목과 첫 문장을 보면서 전율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여느 보통 대학 졸업자들처럼, 전공과 거의 관련 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체념이라도 하겠지만,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특수목적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배운 걸까?


  졸업한 다음 날, 바로 인사발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교육청에서 임용장을 받고 부임한 학교에 갔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내가 맡을 학년과 반, 업무가 주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첫 날은 무슨 정신에 지나간 건지도 모르게 애들과 잘 지내보자고 말하고 밥 먹고 끝났다.  그러나 그 다음 날, A가 오지 않았다. A는 3월이 되기 전, 직전 담임선생님이 2월에 게임을 하느라 많이 나오지 않았다며, 걱정 어린 말로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애가 아프다고만 하였다.

  수업 후, 다시 A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OO당구장에서 일을 하는데, 제가 학교에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퇴근 후에 잠깐 오실 수 있나요?"라며 제안을 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일단 수락했다. 나중에 학년 부장님은 찾아가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일단 뱉아 논 것이길래 찾아갔다. 나에게 비타oo을 주더니, 본인은 휴지로 막아 놓은 소주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병째로 마셨다. 그러면서 집안의 사정을 몇 번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요지는 '애가 게임하다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이해하라.'는 것이다.


  교육대학교 교육과정에 각론(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은 이미 거의 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습득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각론이 전체 교육과정에 60%가 넘는다. 물론, 각 교과의 교수방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교수방법을 습득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가 '배우고자 하는 준비, 의지'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교사는 가르칠 내용을 준비하는 것 만큼이나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원활이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교대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학부모 상담 '요령'이라도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저자의 말대로 '교사가 되면서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사고'라도 좀 가질 수 있도록 양성하면 적어도 내가 가졌던 혼란을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가 지적한대로, 임용고사에 나오는 문제는 참 가관이다. 어떻게 초등학생이 푸는 수준의 문제가 시험문제로 등장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출제자와 응시자 모두 4년 동안 대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초등학교 교사는 웬만한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다고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어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려면, 교육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이 무엇보다 탁월해야 한다. 그런데 임용고사는 교육학에 대한 비중이 1200자 정도의 논술형 문제 한 문제로 끝이다. 너무나 지엽적이고, 너무나 단편적이다. 이렇게 겉핥기로 배우고 시험을 치른 선생님들이 과연 똑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이 아는 것' 만이 똑똑하다고 정의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교대에서 배우지 못한 '교육내용' 이외의 다른 것들은 선배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눈동냥, 귀동냥으로 배우게 되었다. 교직에 들여놓을 때 부터 2년제, 4년제에 대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교직생활을 할 수록 학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우리 학급에 있는 일들을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설파를 했고, 동학년 선생님들은 그에 맞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도교육청에서 하는 자격연수도 선배 선생님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수해 주는 것이라 그런지 교대의 교수님들보다 훨씬 더 공감되고 귀감이 되었다.

  임용시험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과 호불호가 적지 않다. 이를 떠나, 교대와 사범대에서 모두 현장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교육학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이견을 바탕으로 깊은 사색과 성찰,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정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체제가 된다면 임용시험 제도가 필요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이상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교단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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