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喜噫希

악어의 눈물

by 맑은마루 2020. 1. 30.

교실에서는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도록 가르치려 하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다 보니 어린이들도 선생님도 쉽지가 않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기 전에 나의 억울한 일부터 생각이 나고, 그게 잘 먹혀들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이 꽤 많다. 저학년을 하다 보니 그냥 ‘빽’하고 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는 친구의 말은 아예 듣지 않는다. 울면서 말하다 보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고, 말하면서 자기감정이 더 격해져 마음이 동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눈물’을 흘림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감정으로 호소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동요하게 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심리가 본능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게 먹히게 되면 그걸 ‘무기’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3~4월에는 그것 때문에 고생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의 단호함에 먼저 울음을 그치고 차분하게 자기의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자 어린이든, 남자 어린이든 상관없이.

 

학급 긍정 훈육법 등 다양한 교육도서에서 때로는 단호한 교사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도 나에게는 이런 눈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더 눈물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관계가 좋지 않아 서로 대립만 할 때는 꼭 필요한 대화만 하고, 서로의 소통을 최소화하고자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속상해하거나, 심지어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는 후배 교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고 있으니 주변에서는 내가 나쁜 짓을 한 마냥 주변에 오해도 산다. 그런데, 그 눈물에 나는 그런 걱정보다도 그동안 대립했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성인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상대방에 대한 억울함의 호소라기보다, 나를 알아봐 달라는 의미가 있고,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속상하다는 의미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가까움의 의미를, 나는 오해를 했다. 나도 학교에서는 되도록 동료 교사들끼리 형,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양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눈물은, 적어도 선생님의 관계를 넘어서 지내고 싶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배지만 편하게 말을 놓으라고 했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반말은 하는데, 호칭은 부르지 않는다. 1년을 지내고 물어보니, 자기는 형, 동생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깊은 곳에서 배신감이 올라왔다. 그냥 학교를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으로서의 관계만을 원했고, 그냥 자신이 ‘좋은 인상’으로만 남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선생님’이라는 직책으로 부르면서 지낼 관계였으면 그렇게 울지 말았어야 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울어버려 나는 후배를 괴롭히는 못된 선배로 낙인찍으려 의도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최고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자 노력한다.'라고 쓴 그 사람의 글을 보았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생각에 3년이나 지났지만 다시 그 장면이 떠오르며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자신은 남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조금씩 자신의 본심이 드러나면서 결국 상대방이 뒤통수를 맞는다. 사람 관계가 참 어렵지만, 이러한 가식적인 행동 앞에서는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더욱 난감하다. 대면하지 않아도 가상의 공간에서 훅 치고 들어오니, 같은 교직에서 또 어떻게 마주칠지 몰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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