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 같았으면 지금 이 시간이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의 시작은 (아직까지는) 일주일 뒤로 미뤄졌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지금 있는 학교가 세 번째인데, 세 학교에서 모두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학사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교무부장님이 1월에 학사일정에 대한 걱정을 하시길래, 제가 있는 학교마다 휴업했었다며 으름장(?)을 놓았는데, 결국 이 징크스는 계속 안고 가게 되었으니 착잡합니다.
사실, 올해 근무지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한 학교에 3년 이상 있으려니 제가 나태해지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다른 학교를 가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번 학교는 연구학교를 하며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주변 분들이 좋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동학년에서도 그렇고, 교무실도 그렇고, 연구학교로 알게 된 교수님까지도 학교에 남으라는 권유를 하시더군요. 이렇게 학교 남으라는 권유를 들어본 적이 처음인데다, 주변 분들도 서로 마음이 맞으니 학교에 더 있기로 하였습니다. 역시 인화관계도 사회생활에 중요한 척도인가 봅니다.
그래서 올해도 3년째 똑같은 학년에 똑같은 반, 똑같은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3년째 하게 되다보니 이렇게 하면 되겠지, 이러면 되겠네하며 3월부터 해야할 일들이 금방금방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방심했더니 뒤통수를 맞고 있습니다. 2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도 방심했다가 작년보다 더 짧아진 일정에도 진땀을 흘렸고, 학사일정을 시작해야하는 시점에도 뜻하지 않은 전염병으로 3월을 방학처럼 시작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작년에 실천하고자 했던 나의 다짐은 결국 게으름으로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박사과정을 한 학기 휴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우겠다고 달려든 연수만 233시간이었습니다. 자의로 타의로 듣게 된 연수시간이 이렇게 많다고 얻어간 것이 많았을까요? 대학원 9학점까지 포함하면, 저는 너무나 무모한 사람이었습니다. 듣기만 하고 결국에는 제대로 소화를 못시켰으니까요. 마치 고3이 자기가 공부 안하고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과외만 전전한 꼴이었습니다. 자기 만의 시간을 갖고 나의 방법대로 익혀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낍니다.
올해는 '혼자 공부하자, 그리고 직접 실천하자.'가 목표입니다. 이미 벌려놓은 박사과정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활동은 되도록 줄여나가고, 교실에서 교사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교육과정을 어떻게 나의 방법대로 다듬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항상 자각하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신념과 소박한 철학관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
내 나이의 십의 자리가 바뀔 때보다 연도의 십의 자리 바뀔 때가 세월이 많이 흐른 느낌이 듭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동안 게을러서, 바빠서 놓치고 있었던 비전을 다시 되새기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으로 다시, 그렇게 또 다시 다짐합니다.
202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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