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Column

교육 불평등 狂風을 희망의 光風으로

맑은마루 2020. 10. 17. 22:26

<2020강원미래교육포럼 ① 학력과 교육불평등> 발제문

 

  신규교사로 교직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가 생각납니다. 교대에서 4년 동안 초등학교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고 교생실습도 해 보았지만, 막상 저는 교직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5학년 담임이었는데, 우리 반에 5분의 1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기초학력 미달’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이 친구들을 잘 배울 수 있게 하려고 4학년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부터 펴면서 따로 남겨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당직 서시는 분께 ‘돈을 따로 받고 과외를 하냐?’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교대에서는 이러한 학생들에 대한 진단이나 지도법은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주변의 선생님들이나 연수 등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배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지금까지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년 초등학교 담임을 하면서 이러한 학생들을 계속 보았고 지도했지만, 그때마다 돌이켜보면 안타깝게 ‘발만 동동 구른’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드러난 교육 불평등 광풍(狂風)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일 줄 모릅니다. 지난봄,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기 직전에 몰아닥친 상황은 개학 연기, 원격개학, 등교 개학을 지나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광복절을 전후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어 다시 원격 수업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사상 초유의 원격개학은 연구학교나 시범학교 같이 준비라도 했으면 모를까, 갑자기 전국의 모든 학교에 들이친, 그야말로 ‘새로운 형식’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 셈입니다. 3월 31일의 교육부총리의 원격개학 발표 이후 4월 16일까지의 보름 남짓 기간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업일수의 감축과 그에 따른 수업 시수 감축, 1차시(40분)를 온전히 채우느냐 채우지 않느냐 등의 논란은 그렇다 치더라도 갑작스러운 초등 1~2학년 EBS 방송 발표, 그 이후 교육부와 EBS의 ‘나 몰라라’식 학습꾸러미 떠넘기기 등으로 원격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들은 갈팡질팡하며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교사들은 과연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 대한 고민을 원격 수업에 담을 여력이 남아 있었을까요?

  우여곡절 끝에 원격개학이 시작되고, 본격 등교 개학을 시작하게 되기까지의 6~7주의 기간은 그동안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녔기에 학습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았던 것임을 실감하였습니다. 등교하면 그래도 매년 진단 도구를 보정하여 제공하는 기초학력 진단-보정시스템이나 한글 수준 진단 도구(한글 또박또박, 찬찬한글 진단 도구 등)를 통해 학생의 기초학력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처방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학생들도 수업 활동이나 교사의 관찰을 통해 해당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지 수시로 피드백을 할 수 있어서 학생이 학습에 소외되거나 학습결손을 막고, 수준에 맞는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격 수업을 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학교 수업의 과정이 얼마나 대단한 과정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원격 수업이 그만큼 교육 기회, 교육 성취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버렸습니다.

  원격 수업의 형태가 과제형이나 한 방향 콘텐츠 제공형이 대부분이다 보니, 하루에 주어진 학습 내용을 아무 시간에 소화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학생들은 학원이나 과외를 아침부터 시작하면서 사교육을 받는 시간을 늘려갑니다. 오히려 쌍방향으로 수업하는 학교는 실시간으로 오전에 수업을 열면 학원이나 과외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며 항의를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반면, 집안의 형편이 넉넉지 못하거나 부모님이 맞벌이로 자녀의 학습을 챙겨주기 어려운 가정(혹은 방임하는 가정)에서는 학생들이 원격 수업의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여러 번 전화해도 받지 않다가 어쩌다 전화를 받으면 ‘하겠다’라고 말만 하고 계속 출석조차 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만 해도 등교를 하면 9~10개 과목에 대해 일일이 학생의 학습 과정이나 결과물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피드백 자체를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 형태로도 일대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합니다. 댓글과 같이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일대일이 가능하지만, 학생의 현재 성취 정도가 어떤지 선생님도 가늠하지 못합니다. 더 많은 학원에 다니며 배우는 학생들과 그나마 열린 원격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않는) 학생들 사이에서의 교육 불평등의 격차는 얼마나 더 벌어졌을지 가늠조차 어렵습니다.

  더욱이,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직 디지털기기를 다루는 게 익숙지 않아 EBS 방송을 통해 수업을 열었다지만, EBS의 수업 영상도 1~2학년 학생들의 실제 수업 형태와 달리 사실상 문제 풀이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나머지 시간도 쌍방향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 학습지 형태(과제형)로만 활동하였습니다. (쌍방향 수업을 포함하여) 원격 수업 형태는 역할놀이나 몸으로 움직이면서 학습해야 하는 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수업 형태입니다. 그마저도 학부모님께서 출석 확인을 해주시고, 학습하면서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시면 금방 지루해하고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등교 개학을 하고 보니, 학교 수업으로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어린이가 집에서 제대로 학습 관리가 되지 않아 원격 수업에서 배운 부분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거나 어려워하는 경우가 여러 명 있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가 불러온 학교 수업의 변화는 우리가 그동안 학교였기에 가능했던 일들이 얼마나 학생들의 학력을 이끌 수 있었는지, 교육 불평등의 격차를 그나마 완화할 수 있었는지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격 수업만 진행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야말로 계층 여건에 따라 휘둘리는, 교육 불평등의 광풍에 더욱 휩쓸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코로나바이러스만이 교육 불평등을 불러온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 관한 관심은 대중들이나 언론은 물론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교육청, 심지어 일선 학교 선생님들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미 발생한 교육 불평등의 양상을 코로나바이러스가 크게 드러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면 이미 기저에 깔려 있던 교육 불평등의 양상을 일으킨 (제가 경험한 수준에서) 여러 요인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국가 중심 교육과정은 모두를 위하지 않는다.  - 교육의 낭만, 소외된 학생에게는 거기서 거기.     

  교육부 고시, 즉 중앙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운영해야 할 내용을 매우 꼼꼼하게 제시합니다. 수업일수, 수업과목, 수업시수뿐만 아니라 학생이 이루어야 할 성취기준과 이를 위해 배워야 할 내용, 유의사항 등 초등학교 교육과정만 해도 웬만한 대학서적에 버금갈 만합니다. 물론, 최근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가르치는 교사가 교육과정을 성취기준에 맞게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 수준에 맞는 다양한 수업 방법을 적용하여 학생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육과정을 정밀하게 해석하여 그것을 수업자의 의도에 맞게 구성할 수 있는 선생님들의 역량은 제쳐두고라도, 교육과정의 자체, 학년(군)별로 달성해야 하는 성취기준 자체는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을 과연 얼마나 고민하고 배려하고 있을까요? 몇 발 양보해서, 교육부가 제시한 교육과정 고시에서는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수업시간에 지정된 담임(교과)교사가 그냥 그 자리에 앉도록 규정을 빽빽하게 놓은 지금의 교육부 방침은, 제가 그동안 담임하며 보아왔던,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무슨 활동을 하는지조차 몰라 온종일 앉아만 있다 집에 가는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 정규 수업시간에 교사를 통해서 이를 극복할 기회마저 뭉개 버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앞의 발제문에 제시된 뉴질랜드의 ‘리딩 리커버리(Reading Recovery)’ 프로그램도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이 ‘정규 수업시간’에 ‘전문성을 지닌 교사’에게 가서 일대일로 수업을 받습니다. 2017년부터 양구초를 비롯한 몇몇 학교는 1~2학년 학생 중에서 국어 시간(정규 수업시간)이 거의 의미가 없는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 일주일에 2번 문해력 중재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학부모의 만족, 그리고 문해력 향상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만, 그런 효과는 둘째 치더라도, 그래도 적어도 이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은 아침 시간에는 ‘멍때리는 시간’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시간’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자기 공부에서 포기하는 현상(학습된 무기력)도 줄여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김태은, 2019).

  이 부분은 조심스럽지만, “학습은 삶이어야 한다.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통적인 교육방법은 버리고 미래역량, 창의적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과 같은 고차원적 사고력이 더 중요하기에 이러한 부분에 집중하여 교육하여야 한다(이대식, 2020)며 소프트웨어 교육, 플립러닝, 프로젝트 학습 등 다양한 기법을 교실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은 적어도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달성했거나, 달성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교육’입니다. 이러한 역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은 고차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단순 지식이나 기능조차 제대로 획득하지 못하였습니다. 한글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다양한 언어 활동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시범을 보이고 따라 해 볼 수 있는 직접 교수법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이 오히려 더 효과적입니다. 전통적인 교육법을 무시해버리고 낭만(이상)만 찾다 보면,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은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순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평가에 관해서도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고 자존감을 떨어뜨려 공부를 포기하게 한다며, 평가가 아니라 학교 공부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들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너무 입시 위주의 담론에 찌들어버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평가에 대한 순기능을 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평가를, 학생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 수준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부족한 부분은 채울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세워 학습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활동입니다.     

 

  영재 전담 교사는 있고 기초학력 전담 교사는 없다?     

  도교육청에서도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2017년 한글 교육 책임제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수학과 영어에서도 기초학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 교육 책임제의 경우, 2017년 한글 문해 전문가과정을 시작으로 관련 연구 학교 운영, 교육지원청 학습종합클리닉센터를 중심으로 한 한글 지도, 한림대학교 언어청각학부와 협력하는 한글 문해력 향상사업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학교 수업시간에도 천천히 배우는 학생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 교사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협력 교사제 신청 교실 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올해는 읽기 유창성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강원도교육청의 한글 교육 책임제는 다른 시·도 교육청보다 선도하여 도입하여 다른 시·도 교육청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로 많이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청의 노력은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한글 미해득 현황 분석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한글 1학년 미해득 비율은 12.8%로 전년 대비 0.1%P 하락하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에서도 감소하는 경향을 도교육청은 담당업무 경감으로 기초 교과에 집중될 수 있는 환경과 찬찬한글 교재 배부, 온라인 콘텐츠 제공, 등교수업 확대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소의 원인이 정책·제도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인지는 단순 취합한 통계로 검증될 수 없습니다. 감소한 요인이 정책·제도적인 요인보다는 학부모들이나 교사들 사이에서 한글 책임 교육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는 입소문, 한글을 모르니 역시 학교에서 힘들어하더라는 경험이 누적되어 다시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으로 한글 교육을 받는 등, 부적 요인의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 교육청의 정책·제도적 노력이 효과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 부정적 요인들을 검증된 방법으로 효과를 드러내지 않는 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화자찬 또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년 겨울, 한림대학교에서 열린 ‘난독학생지원포럼’에 패널로 참여하면서, 당시 한림대학교 배소영 교수님과 저는 ‘문해 교사’ 제도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교육청에서는 이미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지원으로 학습클리닉전문가, 기초학습지원단 그리고 언어재활사(언어치료사)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인력이 충분히 마련되었고, 영재 교사 제도는 이미 실패한 제도라며 ‘문해 교사(기초학력 지원 교사)’ 제도에 반대의 뜻을 보였습니다.

  영재 교사 제도는 예년부터 교육지원청에 ‘영재교육원’이 신설된 이래, 많은 교사가 과학과 수학 등의 분야에서 영재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해당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사와 관련된 유인책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반 학교 교사가 영재 교사는 제도적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기초 지원 교사는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고 부르짖은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제도는 그렇지 못한 현실은 일선 학교 선생님들에게조차 이해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재 교사 제도를 폐지하던가, 아니면 기초학력 지원 교사도 도입하는 정책의 일관성이 이루어질 수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발제문 등의 자료(이대식, 2019; 이대식, 2020)에서처럼 교사와 관련된 요인이 학업성취(기초학력) 향상의 효과가 큰 변인인 것으로 나타난 연구결과뿐만 아니라, 읽기 자신감을 편찬한 정재석 박사님도 언어재활사나 학습클리닉전문가 등 여러 사람이 난독증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지속해서, 일정 시간 이상 학생을 관찰하며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교사’뿐이라고 말합니다. “교사가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지속해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였습니다. 교육적인 관점에서, 교사의 역할은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이고 꼭 필요한 존재임을 여러 경험과 전문가의 주장으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한글, 기초수학과 관련하여 교원 연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영재 교사 파견제도나, 영어 심화 연수제도(연수 후 3년은 영어전담 의무)와 같이 ‘기초학력 지원 교사’에 대해서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부터 전라남도교육청에서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문해력과 수해력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특수)교사지특수(일반)교사가 아니다? - 제도의 구분을 넘어서야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은 일반 학교에서 학교 교사 보충 지도나 주변의 도움으로 쉽게 기초학력을 달성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경계선 지능이나 난독증을 앓고 있는 학생들은 (물론 만 8세까지는 발달지연 등의 사유로 특수학급에 편성될 수 있지만) 특수학급에 편성되는 자격이 되지 않거나, 자격이 되더라도 학부모님이 낙인에 대한 우려로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일반학급에 남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또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일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이 학생들을 지도할 역량을 갖춰야 하고, 이러한 학생들은 특수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특수교사들도 일반학급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굳이 특수학급에 편성되는 비율이 15% 내외이고,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외국의 사례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 일선 교사들의 이분법적인 생각을 떠나서, 특수교육에 대한 주변과 사회의 낙인의 효과, 그리고 그에 대한 부모로서의 두려움, 거부를 무조건 ‘나쁜 생각(행동)’이라고 비난만 하는 것은 절대 천천히 배우는 학생을 돕는 길이 아닙니다. 기초학력 다중지원팀을 중심으로 하는, 다차원적인 접근을 통해 학생에게 맞춤형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정규 수업시간에 대한 명시적 구분도,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의 구분도 모두 제도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여 다시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도를 정비하였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홍보와 수요자(학생, 학부모)의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학습에 소외된 학생에게 배움의 산들바람光風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우리 삶의 대부분에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교육에서도 몇백 년 넘게 이어지던 공교육제도의 틀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미래 교육이 시작됐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미래’라는 표현으로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려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 연구를 비롯하여 천천히 배우는 학생에 대한 고민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교육부나 교육청은 정책으로 도입하기를 주저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급변 사태가 정책의 변화를 이끈 것입니다. Kingdon(2003)은 이를 ‘정책의 창이 열렸다’고 표현합니다(이종재 외, 2015). 저는 미래 교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묵묵히 해왔던 활동들이 코로나를 맞아 부각 되었고, 이것을 정책결정자들이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코로나바이러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올 정도로 대단한 충격임은 틀림없습니다. 원격 수업을 해야만 하고, 그런 가운데 학력의 격차, 교육의 불평등이 우려되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 기초학력 극복을 위한 정책, 제도를 검토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교사, 학부모 모두 안에 내재하여 있는 고정관념을 돌아보고, 유연한 사고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 산들바람〔光風〕과 같은 배움의 시원함을 선사해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문헌     

김태은(2019). 왜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하는가?. 교육정책포럼. Vol.313, p.4~8. 
이대식(2019). 지속가능한 기초학력 향상 지원체제 구축방안. 교육정책포럼. Vol. 313, p.9~15.
이대식(2020). 학습소외 및 학습결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강원미래교육포럼 발제문.
이종재·이차영·김용·송경오(2015). 교육정책론. 서울:학지사.     

보도자료

강원도교육청. “‘한글책임교육’ 적극 운영으로 문해력 공백 최소화”. 2020.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