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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도 의견이 있다.

톺아보기/Dream Column

by 맑은마루 2021. 2. 2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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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도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가 정착되려면'

 

  우리 학교는 지난주 새학년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를 운영하였다. 도교육청에서는 8년 전부터 시작된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를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중요한 교육과정 운영 또는 교원 인사정책을 결정하라는 취지로 계획을 내려 보냈다. 이는 혁신학교에서 행했던 '민주적 협의과정'을 바탕으로 한 듯하다. 그래서 올해 우리 학교도 이를 바탕으로 작년 1차 협의회 때 나왔던 의제들을 바탕으로 모든 선생님들께서 모인 자리에서 주요 내용을 결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도 연구부장을 하게 된 내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였다. 처음 이러한 방향을 교무부장님께서 설명하실 때, 과연 의견이 잘 모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다. 혁신학교처럼 의견이 팽팽해 늦게까지 결정이 되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고 침묵을 해서 늦게까지 결정이 쉽지 못하게 될까 하는 걱정. 그래도 어느 정도 의견이 나와 의사결정의 흐름을 탈 수 있겠지 하며 작은 기대도 가졌다.

 

  진행한 결과는, 나의 걱정과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그나마 가졌던 희망섞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그리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에 마칠 수 있으리라 했던 기대도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렸고, 네 번째 2월 함께 만들기를 진행하지만, 오늘처럼 억지로 시간을 운영한 것은 처음이다. 준비는 방역 차원에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휴대전화 앱을 사용하도록 하였지만, 체력소모는 최악이어서 머리가 멍해질 대로 멍해진 나는 퇴근하자마자 곯아떨어지다 자정 무렵 깼다. 다음날도 숙취가 온 것처럼 아직도 멍하고 목은 타들어갔다.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미리 전제하자면, 나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태도를 탓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만장일치'이다. 모든 사람들이 안건에 대하여 동의를 하는 것.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의 의견은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치열한 토론'과 의견을 나누면서 의견을 좁혀가고 타협을 해나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견을 결정하는 집단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집단은 과연 얼마나 될까?

 

  등교, 원격수업 운영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안건 중, 등교수업시 일일 시정표와 관련하여 의논하였다. 작년에는 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도 없애고 점심시간도 40분을 편성하며 학생들을 일찍 하교시켰다.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활동을 준비하면서 교무실에서 교무부장님과 나, 복지부장(저학년 부장 겸임)이 이야기 나눌 때에는 학생들이 쉴 시간조차도 없고, 사회성도 함양되기 어려우며(저학년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어울릴 시간 조차 없으므로)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은 무조건 일찍 끝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코로나 급속 확산 속에서도 긴급 돌봄 어린이들은 학교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올해 교육부에서도 코로나 상황에서 1, 2학년은 밀집도를 제외하고 각종 조치들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니, 일일 시정표도 코로나 이전 시간표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을 냈다. 이를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시간에 의견을 나누자고 했다. 5분 이상 침묵이 흐르거나 교무부장님 등이 이전 시간표로 돌아가자고 했다. 10분이 지났다. 한 분 정도 선생님이 코로나 이전으로 시정표를 돌리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더 이상 의견을 내는 선생님이 없어 온라인으로 투표를 부쳤다. 결과는 70% 이상이 코로나 상황의 시정표로 운영하자고 투표를 하였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코로나 상황의 시정표로 하자는 결과가 나왔는데, 왜 정작 10분이 지나도록 관련 의견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러한 안건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15개 정도를 올렸고, 대부분은 침묵이 흘렀다. 진행하는 나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선생님들은 침묵하는 것일까? 물론 이번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에는 온라인 앱 위주로 활용하고자 했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므로 포스트 잇을 붙이거나 생각을 모으는 활동을 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고 판단, 올려놓지 않았다(포스트잇 관련 활동이 너무 진부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즉,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이번에 온라인 투표 앱 등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소위 '목소리 큰'선생님들의 의견대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의 예를 든다면, 일일 시정표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침묵하는 선생님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말이다. 나중에 끝나고, 선생님들께 여쭈어보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발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라고 많이 말씀하셨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논의하기 전에, 민주주의가 들어오기 전부터 지속되어 온 문화의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이 말하지 않는 지역 정서, 조용히 침묵하는 것이 예의였던 과거 관습 등등. 물론 권위주의적인 기관장의 독단결정에 익숙해진,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행동들은 과감히 타파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혁신이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서적인 흐름을 제대로 읽고, 침묵하는 다수(혹은 소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장치들이 적극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소집단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시스템 (예: 교무위원회, 인사자문위원회 등)이 전체가 모여 논의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모든 이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은, 그 사람의 의견이 아무리 이상적이고 도덕적이며 당위적이라도, 결국 권력이 찍어누르는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혁신학교를 일반화하는 과정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러한 요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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